*치릿님의 그림 연성으로 쓴 글입니다 *단문 *여우 알바와 크레아시온 처음, 그 짐승이 시온의 앞에 나타난 것은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모닥불을 지피고, 마물이 다가오지 않을까 날을 세우고 있던 밤. 여느 때와 같이 천천하고 묵직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기척도 없이, 깃털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은 것은 낯선 온기였다. 당연히, 시온은 경계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옅은 한숨과 더불어 검 또한 땅 끝을 향했다. 시온의 눈앞에 자리 잡고 앉은 것은 그저 한 마리, 작은 여우. 그래, 돌이켜 보면 산짐승에게 경계의 날을 세울 정도로 약해빠진 몸이 아니었다. 그저 평소보다 예민했던 탓에 여우 한 마리의 기척에도 놀란 것이리라. 다시금 한숨이 새어 나왔다. 몇 달, 아니 일 년이 꼬박 넘어가..
*단문*크레아시온 시절 날조*마오루바 등장 공기가 차가웠다. 소년은 낡은 망토를 두른 채 그 찬 공기를 짓이기며 걷고 있었다. 소년의 뒷모습은 풀 한포기 조차 볼 수 없는 새카만 밤의 황야에 녹아들 것만 같았다. 소년이 숨을 내쉴 때마다 새하얗게 언 숨결이 뿌옇게 흩어졌다. 소년은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내려, 버석거리는 모래를 바라봤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 말을 건넬 상대 하나 없는 여행길에 지칠 때의 습관 같은 것. 소년이 걸음을 멈춘다고 해서 뒤를 돌아봐 줄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 그 행위는 허무하기 그지없을 뿐. 소년은, 다시 고개를 들어 무거운 발을 들어올렸다.발을 내딛는 순간, 눈앞에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인지하고 조금 후, 그 빛이 사람의 형체라는 것을 깨달은 소년은..
*단문 아주 오래 전, 새카만 밤이 있었다. 밤은 늘 혼자였다. 긴 시간, 홀로 존재해왔다. 멀리서 빛을 흩뿌리는 별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그들이 밤에게 다가오는 일은 없었다. 그 희미한 빛을 바라만 보던 밤은, 어느 날부터인가 그 빛의 조각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조각들은 반짝거리며 밤의 손바닥 위에 모였고, 그것들은 어느 정도 밤에게 위안과 따스함을 주었다. 그러나 그 위안도, 따스한 온기도 일시적인 것. 빛은 어느 샌가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밤은, 또 다시 빛을 모았지만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밤은 웅크린 채 아무것도 보지 않도록 했다. 차라리 잠들어버리자,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 그렇게 생각한 밤은 눈을 감아버렸다. 이걸로 된 거냐는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린 것 같았지만, 밤에게 말을 걸 존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