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세계가 갈라졌다. 그렇게 느낄 만큼 거대한 개연성의 전류가 공간에 내리꽂혔다.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다수의 성좌와 마왕은 물론 그들을 움직이던 설화마저 침묵할 힘이었다. 새카만, 혹은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기묘한 색의 혼란을 찢고 나타난 사람은 한 남자였다. 그는 흰 코트 자락을 날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주변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싸움판의 가운데에 섰다.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는, 그야말로 유중혁과 완전히 같은 얼굴이었으므로. 다른 점은 다소의 체격과 흰 코트 뿐. 그리고, 김독자의 앞에 서 미미하게나마 부드럽게 변한, 표정이었다.

 

김독자.”

 

이름을 불린 당사자는, 현재의 상황도 잊은 채 입을 벌렸다. 대답도, 그럴싸한 행동도 해내지 못한 지극히 당황한 인간의 반응이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만, 김독자에겐 남들 이상으로 이 상황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네가,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미래의 너를 만났다. 그래서.”

 

지금의 너를 데려가기 위해 왔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응당 그래야한다는 대답에 김독자는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유중혁,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가, ?”

지금은 말 해줄 수 없다. 네가……저 녀석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유처럼.”

 

환청처럼 들렸던 비난과, 날카로운 눈빛이 다시금 세차게 김독자를 지키는 벽을 흔들었다. 손끝부터 떨리기 시작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흰 코트의 유중혁은 아주 약한 것을 감싸 안듯 김독자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를 위해, 네가 전부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러니, 나와 가자.”

 

어느새 이 세계의 유중혁이 진천패도를 또 다른 자신을 향해 겨누고 있었으나, 기실 상대가 될 리 없었으므로 김독자를 끌어안은 팔은 단단하고 굳건하기만 했다. 그리고 김독자는, 이 달콤한 소리에 그대로 끌려가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나, 그러나.

 

너를 혼자 가게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아는 남자의 팔을, 잡고야 말았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