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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과거 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리석었던 이슬레이의 이야기, 






 

 

이슬레이는 머리가 좋았다. 미숙한 시절이 있었을지라도 한 번 익힌 것은 잊지 않았다. 요령, 기억력,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을 몸에 새긴 후로는 여러 요소를 종합해 완벽한 사람이 되어 갔다. 타인은, 우스웠다. 자기보다 더 아래에서 기고 있는 존재들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한 번의 결정적 실수로 잃어버린 사람과, 그 후회, 그리고 그 시절에서 침체되어 있는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주변 인물들은 편리한 말, 도구, 꼭두각시, 혹은, 이용가치가 있는 것으로 격하되었다.


 

고작 게임, 그래봐야 게임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인간들도 우스울 터인데 게임 속에서 만나는 것들이야 말해서 무어할까. 라이퀴아는, 그런 의미에서 몹시 이용가치가 있는 체스 말이었다.

 


그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이별을 겁내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꺼렸다. 일견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지만 오히려 반대, 이슬레이는 그의 옆자리를 한 번 차지하면 어떤 때라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슬레이는 그렇게 라이퀴아의 옆에 서서 스승이 되었고, 친구가 되었고, 보호자이자 신뢰할 수 있는 이로 자리 잡았다.


 

물론 라이퀴아는 경계심이 강했다. 이슬레이를 내치지는 않았으나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지도 않았다. 불안해하며,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의 손을 잡고 돌아왔다. 이슬레이는 그것이 불쾌했고, 아주 조금 불편했다. 첫째로는 라이퀴아가 예상 이외의 행동을 했었다는 점, 그리고 둘째로는, 글쎄, 그게 무엇인지 당시의 이슬레이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때의 감정이나 기분은 둘째치고서라도 라이퀴아가 데려온 타이난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방해였기 때문에 계속 라이퀴아의 곁에서 떨어트려 바깥으로 내돌렸다.


 

라이퀴아가 고립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당연한 수순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우리는 라이퀴아를 믿어주자.


 

그 마지막 말로써, 그를 벼랑 끝까지 몰았다. 그는 이슬레이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전적으로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그는 내내 자신의 옆에 있었던 사람을 내치지 못했다. 예상대로였고, 계획대로였다. 입을 열고 싶어도 그는, 이슬레이가 원하는 대로 아무에게도 진상을 말하지 않았다.

 


고작 게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레이는 라이퀴아가 어떤 기분일지, 어떤 생각으로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상상하지 못했다.


 

모든 계획이 끝나고, 라이퀴아가 사라졌다. 이슬레이는, 사람들의 입이 조용해질 즈음에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사 개월, 반년, 영웅의 마스터, 라이조의 악몽, 라이퀴아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때때로, 이슬레이는 현실의 꿈에서도 그 마지막을 보게 되었다. 흩어지는 눈물과, 비명과, 내던져진 갑옷, 빛과 눈물에 젖어 푸르게 물들었던 눈동자, 꽉 깨문 입술과, 벗어던진 갑옷 아래의 그 작은 어깨까지.


 

아크메이지 이슬레이는 그때, 영웅 라이퀴아를 죽이고, 그 너머에서 울고 있던 어린아이를 죽였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무게보다도 훨씬 무겁고, 끔찍한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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