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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죄악을 낳지. 어린 목소리는 이질적일 정도로 달콤하게 속삭였다. 사랑은 달콤하고, 다정한 거라고? , 물론 그런 깨끗하기만 한 감정도 존재해. 아주 드물게. 말의 끝부분에 이르러 달콤하고 부드럽던 목소리가 냉랭하게 가라앉았다.

 

소년은, 그 어린 목소리를 외면했다. 옅은 갈색 머리칼, 상처투성이인 손발, 지친 눈동자를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소년에게 끔찍한 존재인 것이었다. 눈을 꼭 감은 소년의 뺨 위로 피투성이인 손가락이 닿았다.

 

,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원했던 네가 수치스러워서?

 

온기가 없는 피부, 거죽, 이미 죽어버린 것. 그것은 소년이었다. 소년의 과오였다. 너무 커져버린 마음에서 떨어져 나온 거무죽죽한 찌꺼기, 욕망, 미움, 슬픔, 미련, 망설임, 그럼에도 사랑인 것. 사랑이었던 것. 지금은 소년이 차마 마주볼 수 없던 것.

 

하지만 이게 너야. 네 마음이야. 너 자신, 세계를 구한 용사, 영웅의 가장 깊은 곳.

 

듣고 싶지 않아. 소년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들어야 해.

 

냉엄하게 명령하는 목소리는 어린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면, 새하얀 망토를 두른, 어딘가 낯선 남자가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희미하게 빛 무리가 둘러싸고 있는 그 남자는 어째서인지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와는 달리 무척 다정하고, 슬프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슬퍼서, 밉고, 괴로워서, 그래서.

 

그렇지, 알고 있어.

알고 있다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주면 좋을 텐데. 소년은 웅크렸다. 이제 아무도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 듣고 싶지도 않다. 잠들어 버리고 싶다.

 

널 기다리고 있어.

 

귀를 막아도 막을 수 없는 나지막하고 조용한 한마디와 함께, 소년의 작은 몸은 미끄러졌다. 그리고, , 빛뿐인 곳으로,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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