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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겁고, 무척 목이 말랐다. 눈을 뜬 직후 알바가 처음으로 한 생각이었다. 흐린 시야가 거슬려 무심코 올린 손은 어째서인지 묵직한 것에 눌려서 움직이지 않았다. 푹신하고, 따뜻한데, 몹시 답답한 감촉이었다. 알바의 시야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뚜렷하게 돌아왔다. 낯선 방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곳이었고, 책상 위에는 책을 비롯해 필기구와 종이뭉치들이 늘어서 있었다. 종이 냄새가 강하게 코를 간질였다. 익숙하지 않아 재채기라도 해 버릴 것 같은 따뜻한 공기에, 알바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시야를 덮을 정도로 제 몸을 덮은 것을 보고 알바는 무심코 미묘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불이었다. 이불, 통상적으로 자고 있는 사람이 덮고 있기에 전혀 문제없을 것. 그러나 그것은, 사람 얼굴 위에 올려놓아 두면 그대로 질식이라도 할 것 같은 두께였다. 높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까. 여러 겹으로 층층이 쌓인 이불은 체력이 한계까지 떨어진 몸으로는 들어올리기는커녕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였다. 알바는 이 망연하고 어찌할 방도가 없는 상황에서 눈썹을 늘어트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 것은 알바가 한탄처럼 한숨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깼나요? 오래도 자네요, 당신. 과연 쓰레기더미 위에서 자고 있을 때부터 대강 짐작은 했습니다만.”

 

이불더미 너머로 보이는 얼굴은 어딘가 귀한 도련님처럼 하얗고 단정한 인상이었다. 물론, 내뱉는 말은 단정하기는커녕 이죽거림이 가득해 알바는 무심코 소리쳤다.

 

그건 자고 있던 게 아니야!”

, 이해합니다. 그런 취향도 있는 법이죠.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니 쓰레기 더미 위가 침대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법도, , 그런 성벽입니까?”

쓰레기더미 위를 편안하게 느끼는 성벽 없어! 그보다 그런 사람 있을 리 없잖아!”

바보로군요, 당신. 방금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고 말했는데 벌써 잊었습니까? 비를 하도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요? 아니면 원래부터, , 미안합니다. 면전에 대고 물어볼 것이 아니었네요!”

 

남자는 처음 단정하고 냉정해 보이던 얼굴에 생기를 가득 담고, 응당 그래야한다는 듯 알바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마치 기다리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 즐거운 표정에 알바는 울컥 치솟는 울화를 담아 현재 낼 수 있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부정했다.

 

그런 취향도 바보도 머리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그러면?”

 

거짓말처럼 남자의 눈이 차가워졌다. 남자는 입술을 짓씹으며 침묵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입을 열었다.

 

거기서 죽을 생각이었다고 말하는 겁니까? 내 앞에서? 당신이?”

 

몰아붙이는 것처럼 무거운 어조였다. 그것은 어째서인지 나지막하고 조용한 목소리였음에도 공포조차 느끼게 했다. 알바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순간 고개를 끄덕이기라도 했다간 그 순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남자의 무언가가 끊어질 것 같다는 느낌 탓이었다. 처음 만난 남자였음에도, 알바는 어째서인지 이 남자가 몹시도 위험하고, 섬세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오간 말 또한 그 감각을 부채질했다. 마치, 오래 전에 만난 적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미안, .”

 

알바는 남자의 눈을 조금 피한 채, 속삭이듯 사과했다. 남자에게 미안한 이유조차 알 수 없었지만, 그래야 한다는 속삭임에 따르는 것처럼. 슬쩍 훔쳐보듯 눈을 굴려 남자의 얼굴을 보면,그는, 그 사람은.

 

괜찮아요.”

 

부드럽게, 몹시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

 

그 표정에 가슴 깊은 곳이 찌르르 울리는 것만 같은 통증에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던 알바의 이마를 짚은 남자는 이내 손을 떼고는 방에 있던 찬장에서 하얀 약통을 꺼내 손톱만한 알약을 두 개, 손바닥에 올린 채 알바에게 내밀었다.

 

열은 이제 거의 내린 것 같지만 먹어두는 게 좋아요. 몸은 일으킬 수 있습니까?”

으음, 모르겠어.”

 

알바는 힐끗 몸을 덮은 이불에 시선을 던지며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남자는 이제 깨달은 듯 쌓아두었던 이불을, 하나만 제외하고 전부 들어서 내려놓았다. 한 손으로. 일순 자신이 본 것이 착각인가 하고 바닥에 내려간 이불과 남자를 번갈아보는 알바의 혼란은 안중에도 없는 듯 그는 베개를 세워 알바의 등을 받치고 기대듯 앉혔다. 무척 자연스러운 그 손길은 누군가를 돌보는 데에 익숙한 것 같이 느껴졌다.

 

이건 물 없이 삼키는 약이니, 좀 써도 조금 참아요.”

 

벌린 입술 사이로 들어온 약은 예고한 대로 무척 썼다. 하지만 좀 전까지 소리쳤던 것으로 기력이 완전히 소진된 탓인지 목 안쪽의 욱신거리는 통증에 좀처럼 약을 삼킬 수 없었다. 쓴 맛이 퍼지는 혀끝이 아려 눈물방울이 눈꼬리에 고였다가 뚝, 이불 위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짧게 한숨을 쉬더니 알바의 뺨을 감쌌다. 갑작스레 얼굴 위로 지는 그림자에 동그랗게 뜬 알바의 눈에는 그의 단정하고 하얀 얼굴이 가득 찼다.

 

, ?”

 

짧은 소리조차 제대로 낼 시간을 주지 않고 입술이 마주 닿았다. 까슬하게 갈라진 입술 사이로 낮선 열이 침입했다. 알바는 코를 간질이는 타인의 향기와 뒤섞이는 혀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분명 뺨에 닿은 손은 알바보다 차가울 터인데 그 손도, 입술도, 무엇 하나 뜨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 숨을 쉬는 것도 할 수 없어 그저 그 감각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제대로 삼켰습니까?”

 

입술이 떨어지고, 지근거리에서 들린 질문에 알바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남자는 너무나도 덤덤한 얼굴이어서, 방금 그 행위에 대해서는 물을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 답에 남자는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금방 잠이 올 테니, 조금 더 자 두도록 하세요. 깨고 나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죠.”

 

뺨에서 손이 떨어졌다. 알바는 여태껏, 남자의 손이 뺨을 줄곧 감싸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스쳐가는 손가락 끝에서는 아린 약 냄새와, 오래된 종이, 잉크 냄새가 났다. 무척 익숙하고, 그리운 향이었다. 깜빡, 기억을 헤집듯 눈을 감자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졸음이 쏟아졌다. 눈꺼풀 위로, 잠시 따뜻한 감촉이 스치고 알바는 수마에 잡혀 베개에 얼굴을 폭 묻었다. 다정하고 상냥한 자장가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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