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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갈라졌다. 그렇게 느낄 만큼 거대한 개연성의 전류가 공간에 내리꽂혔다.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다수의 성좌와 마왕은 물론 그들을 움직이던 설화마저 침묵할 힘이었다. 새카만, 혹은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기묘한 색의 혼란을 찢고 나타난 사람은 한 남자였다. 그는 흰 코트 자락을 날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주변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싸움판의 가운데에 섰다.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는, 그야말로 유중혁과 완전히 같은 얼굴이었으므로. 다른 점은 다소의 체격과 흰 코트 뿐. 그리고, 김독자의 앞에 서 미미하게나마 부드럽게 변한, 표정이었다. “김독자.” 이름을 불린 당사자는, 현재의 상황도 잊은 채 입을 벌렸다. 대답도, 그럴싸한 행동도 해내..
그 봄, 다정한 햇살 아래에서. 정갈하게 깔린 미색의 레이스 테이블보 위 아기자기한 색감의 플레이트. 오밀조밀한 모양새로 정성이 듬뿍 들어갔음이 분명한 쿠키와 마카롱, 한 입 크기의 케이크 따위가 그릇의 빈자리를 장식했다. 테이블 끄트머리에 자리한 새하얀 티 컵에는 오렌지를 녹여낸 색의 은은한 찻물이 적당하게 들어차 있었다. 잔잔한 찻물이 흔들리는 위로 온화한 색의 푸른 하늘 아래 옅은 금색 머리칼이 봄꽃처럼 비쳤다. 하얀 뺨 위로 부드럽게 햇살이 내려앉는 모습은 마치 투명한 물감으로 그린 수채화를 연상시켰다. 허리를 곧게 펴고 앉은 여성은 온통 화려한 꽃나무 아래에서도 그저 단단한 나무처럼 흔들림 없는 올곧음을 보여주었다. 내리깔고 있던 눈동자가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소녀를 향하면, 긴 속눈썹 그림자가..